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쥴 앤 짐』은 20세기 초 유럽을 배경으로, 두 남성과 한 여성 사이의 사랑과 우정을 통해 인간 감정의 복잡함을 섬세하게 그려낸 누벨바그 대표작이다. 시대를 초월한 이 영화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면서도 충돌하는 욕망과 상실의 정서를 탁월한 연출과 시적 서사로 담아낸다.
누벨바그, 삶과 사랑을 실험하다
1962년 발표된 『쥴 앤 짐(Jules et Jim)』은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대표작으로, 5~60년대 영화사의 한 경향인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의 정수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앙리 피에르 로셰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1차 세계대전 전후 유럽을 배경으로 두 남성과 한 여성의 삼각관계를 다룬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우정과 사랑, 자유와 소유, 욕망과 파괴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관객에게 깊은 사유의 여지를 제공한다. 영화는 1912년 독일인 쥴(Jules)과 프랑스인 짐(Jim)이 파리에서 만나 우정을 쌓아가며 시작된다. 둘은 문학, 예술, 삶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며 자유로운 청춘을 보낸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은 ‘카트린(Catherine)’이라는 여성을 만나고, 그녀에게 동시에 매혹된다. 쥴은 카트린과 결혼하지만, 그녀는 곧 짐과도 감정적으로 얽히며 세 사람 사이의 균형은 점점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 구조는 표면적으로 삼각관계이지만, 그 밑에는 시대적 변동과 인간 본성의 모순이 고스란히 흐른다. 트뤼포는 이 작품에서 혁신적인 촬영기법과 빠른 편집, 나레이션과 정지화면을 적극 활용해 관습적인 영화 언어를 벗어난다. 이는 단지 형식적인 실험이 아니라, 인물들의 감정과 시대의 흐름을 영화적으로 체화하는 방식이다. 관객은 이야기 속 인물들과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그들의 내면에 깊숙이 침투하게 된다. 이는 누벨바그가 추구하던 관객의 자율성과 영화적 사고를 유도하는 대표적인 연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은 소유인가, 해방인가
『쥴 앤 짐』의 중심에는 카트린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녀는 기존의 여성 캐릭터와는 확연히 다른 존재다. 한 남자의 소유물이 되기를 거부하고, 사랑에 있어 전통적인 윤리를 따르지 않는다. 그녀는 감정의 진실성만을 중시하며, 순간순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 쥴과 짐은 그녀에게 매혹되지만, 동시에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 모순은 결국 관계의 파열로 이어지며, 세 사람의 운명은 예기치 못한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카트린을 통해 트뤼포는 ‘자유’라는 개념의 이중성을 조명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자유를 얼마나 억압하거나 해방시킬 수 있는지, 자유를 추구하다가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에 이를 수 있는지를 영화는 철저히 보여준다. 쥴은 사랑을 통해 안정과 소속을 원하지만, 카트린은 그러한 틀을 거부한다. 짐은 이 둘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결국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이처럼 『쥴 앤 짐』은 단순한 연애담이 아닌, 인간 존재의 근원적 욕망과 그에 따른 고통을 그리는 철학적 작품이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그 어떤 인물도 명백하게 비난하거나 옹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쥴은 유약하고, 짐은 갈팡질팡하며, 카트린은 이기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솔직하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상처를 주고, 끝내 부서진다. 트뤼포는 이 과정을 미화하지도, 과장하지도 않으며, 그저 담담하게 기록한다. 이로써 관객은 오히려 더 큰 감정의 진폭을 경험하게 된다.
부서진 감정의 풍경, 그 안에서 피어난 인간성
『쥴 앤 짐』은 누벨바그의 형식미를 뛰어넘어, 인간 관계의 본질에 다가서는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자유와 사랑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인간은 결국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가, 우리는 타인을 이해한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영화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그 비극 속에서 감정의 진정성이 살아 숨 쉰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우정의 복잡함, 예측 불가능함, 그리고 그것이 불러오는 기쁨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삶 그 자체를 압축해놓은 듯한 힘을 지닌다. 아날로그 감성과 흑백 영상, 고전적 연출을 통해 전해지는 그 순수한 감정은 지금 봐도 낡지 않으며, 오히려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쥴 앤 짐』은 인간의 관계를 섬세하게 탐구한 영화로, 단순한 시대극을 넘어선 깊이를 품고 있다. 감정의 복잡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거나, 누군가의 선택이 왜 그렇게 극단적이었는지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영화는 조용히 다가와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을 것이다. 한국에는 2023년 재개봉 된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