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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가 선택한 고요한 울림의 영화, '노매드랜드'

by 엠제이2 2025. 5. 22.

오스카 수상작 중 대표적인 작품들을 선별해 공통점을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작품은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노매드랜드』입니다. 이 영화는 팬데믹 시대 이전 미국 사회의 빈곤과 유랑을 조용히 관찰한 수작입니다. 대사보다 이미지, 사건보다 분위기로 관객의 감정에 호소하며, 주류 사회의 이면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조명한 이 영화는 ‘작은 이야기 속의 큰 울림’이라는 오스카 수상작들의 공통된 미덕을 보여줍니다. 본 글에서는 작품상 수상의 배경과 함께, 왜 이 영화가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았는지 분석합니다.

 

영화 노매드랜드 포스터 일부분
영화 '노매드랜드'

오스카의 눈에 띈 조용한 걸작, 『노매드랜드』

『노매드랜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적 기반을 잃은 미국 중장년층의 삶을 다룬 영화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제시카 브루더의 책 『Nomadland: Surviving America in the Twenty-First Century(노매드랜드: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극 중 주인공 펀은 집도 직장도 없이 밴에 거주하며 계절 노동을 이어가는 ‘노매드(유랑자)’로 살아갑니다. 영화는 이들의 삶을 다큐멘터리적인 시선으로 조명하며, 개인의 고립과 연대, 현대 자본주의의 이면을 서정적으로 풀어냅니다. 감독 클로이 자오는 비전문 배우와 실제 유랑민을 출연시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허무는 연출로 주목받았습니다. 또한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내면의 외침을 억제하며 살아가는 인물을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해냈고, 이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노매드랜드』는 기존의 오스카 수상작처럼 대서사적이거나 극적인 반전 없이, 매우 일상적인 흐름과 느린 템포를 유지합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오스카의 선택을 받은 이유를 분석해보는 일은 최근 아카데미의 평가 기준 변화를 이해하는 데 큰 단서가 됩니다.

 

작지만 묵직한 이야기: 아카데미의 새로운 기준

『노매드랜드』는 전통적인 할리우드 영화 문법과는 거리를 둔 작품입니다. 갈등 구조가 뚜렷하지 않으며, 선악 구도나 화려한 사건 전개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가 이 작품에 최고의 상을 수여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바로 “삶의 진정성”과 “시대정신”입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랫동안 보수적인 취향을 유지해왔지만, 최근에는 다양성, 현실 반영, 작가주의 영화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노매드랜드』는 바로 그 전환점을 보여주는 대표작입니다. 빈곤과 고독, 상실과 연대를 담백하게 풀어낸 이 영화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립된 전 세계인의 정서와 맞닿아 있으며, 누구나 느끼는 외로움과 무력감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또한 클로이 자오 감독이 여성, 아시아계라는 점 역시 오스카의 다양성 확대 기조와 맞물려 의미 있는 수상으로 평가됩니다. 이는 단지 영화의 작품성뿐 아니라, 수상 배경에 내포된 상징성과 가치관까지 고려되었음을 시사합니다. 『노매드랜드』는 특별한 사건 없이도 관객의 내면을 울릴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러한 정서적 깊이와 현실성,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는 최근 아카데미가 작품상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스카 수상작의 공통점, 진실한 이야기

『노매드랜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식과는 다른 길을 택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다름’이야말로 이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주목받은 이유입니다. 삶의 구석진 풍경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용기, 인물을 부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태도,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선은 최근 오스카 수상작들이 공유하는 공통된 가치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영화는 “한 개인의 이야기가 곧 사회의 이야기”임을 입증합니다. 펀의 여정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존재의 의미를 찾는 여정이며, 이는 관객 각자가 자신의 인생을 투영하게 만듭니다.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연기는 인물을 설명하기보다 ‘존재하게’ 만들었고, 이는 관객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정서를 선사합니다. 결국 『노매드랜드』는 오스카 수상작들이 최근 들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예입니다. 더 이상 거대한 드라마나 화려한 연출이 아니라, ‘진실한 이야기’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야말로 오늘날 아카데미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미덕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