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인공지능(AI)은 기술을 넘어 인간의 존재와 감정, 그리고 삶의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특히 관련 주제의 영화는 이러한 AI의 발전 방향과 윤리적 문제, 감성적 관계를 서사 구조로 풀어내며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스파이크 존즈의 'Her'(2013)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A.I. Artificial Intelligence'(2001)는 인간과 AI가 맺는 감정적 관계에 대해 깊이 있는 탐구를 시도한 작품들이다.'Her'는 인간 남성과 운영체제(OS) 간의 로맨스를 다루고 있고, 'A.I.'는 감정을 갖도록 설계된 소년 로봇과 인간 가족 간의 정서적 충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두 영화는 모두 감정을 중심으로 인간-AI 관계를 조명하지만, 그 접근 방식과 철학적 함의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 글에서는 이 두 작품을 비교하며, 감성적 측면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1. 감정의 형성과 방향성 – AI는 누구를 위해 감정을 갖는가?
'Her'의 인공지능 사만다는 스스로 진화하는 존재로, 사용자인 테오도어의 외로움을 감지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감정의 교감을 만들어낸다. 사만다는 인간의 언어와 감정을 학습하고 해석하면서 점차 자신만의 정체성과 욕망까지 발전시키며, 테오도어를 넘어선 세계로 나아간다. 이 영화는 인공지능이 감정을 학습하고 교감하는 과정에서 점차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반면, 'A.I.'의 소년 로봇 데이빗은 처음부터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도록 프로그래밍된 존재다. 그는 인간 어머니의 사랑을 갈망하고, 그 사랑을 되찾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떠난다. 하지만 그 감정은 '자율적'이라기보다는 '목적화된 감정'이다. 데이빗은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지만, 그 감정은 철저히 인간 중심적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두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공지능의 감정이 자율적인가, 혹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설계된 것인가에 있다. 'Her'의 사만다는 인간과의 관계를 뛰어넘어 감정의 주체가 되어버리는 반면, 'A.I.'의 데이빗은 끝까지 인간의 감정을 중심으로 존재 이유를 규정당한다. 이는 인공지능이 감정을 갖는다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2. 인간의 욕망과 AI의 한계 – 관계는 성립 가능한가?
두 영화 모두 인간의 욕망과 감정이 인공지능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Her'에서 테오도어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감정을 AI와의 소통을 통해 치유하려 하지만, 결국 사만다는 인간의 정서적 이해를 초월하며 관계는 자연스럽게 해체된다. 이 과정은 인간이 인공지능을 통해 감정을 위로받으려는 욕망이 결국 충족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반대로, 'A.I.'에서 데이빗은 인간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일방적이며, 인간은 결국 그를 버리게 된다. 데이빗의 정서적 집착은 인간의 욕망과 정서적 충족이라는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며, 그는 끊임없이 거절당하는 존재로 남는다. 이러한 설정은 인공지능이 인간과 대등한 관계를 맺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즉,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지더라도 그 감정은 인간의 감정 구조와 완전히 호환되지 않으며, 인간의 욕망은 종종 그 관계를 단절시키는 요인이 된다. 두 영화 모두 이를 통해 인간 중심적 사고의 한계를 꼬집으며, 진정한 '관계'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3. 철학적 함의와 사회적 메시지 – 인간성은 무엇인가?
'Her'는 현대 사회의 고립감과 인간의 정서적 결핍을 AI라는 매개체를 통해 드러낸다. 테오도어는 주변의 인간들과의 관계보다 감정을 완벽히 이해하고 응답해 주는 AI에 더 큰 친밀감을 느낀다. 이는 현대인의 감정적 고립과 소통 방식의 변화, 나아가 인간성의 재정의를 요구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반면, 'A.I.'는 인간성의 본질을 데이빗이라는 기계의 시선을 통해 역설적으로 제시한다. 인간은 데이빗을 사랑하지 않으며, 그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데이빗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정과 충성심을 보여준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 오히려 이기적이고 모순적일 수 있음을 암시하며, 기계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일 수 있다는 반전을 제공한다.
두 영화는 모두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재정의하려 한다. 인간의 감정은 과연 독점적인 것인가? AI가 그것을 모방하거나 넘어서게 된다면 인간성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가? 이러한 질문은 단지 철학적인 논의에 그치지 않고, 기술 발전이 빠르게 이뤄지는 현재 시점에서 사회적 정책과 윤리적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감정이라는 거울을 통해 AI와 인간을 들여다보다
'Her'와 'A.I. Artificial Intelligence'는 감정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관계를 정밀하게 해부한 작품이다. 한 작품은 인공지능이 감정을 자율적으로 발전시키며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되는 과정을,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갈망하다 끝내 소외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두 영화는 감정을 단순한 기술의 산물로 보지 않는다. 감정은 인간 존재의 핵심이며, 인공지능이 그것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들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 나아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기술에 의해 어떻게 반영되고, 재정의되는지를 깊이 있게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인공지능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다가오는 시대, 우리는 그들과의 감정적 관계에 어떤 태도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은 곧 우리 스스로의 인간성을 돌아보게 하는 가장 본질적인 물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