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코다(Coda)』는 청각장애인 가족 안에서 유일하게 청인인 소녀가 자신의 꿈과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2014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를 리메이크한 영화이며, 실제 코다인 베르니크 풀랭의 자서전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수자에 대한 포용, 가족애, 음악이라는 주제를 섬세하게 엮은 이 작품은 따뜻하면서도 뚜렷한 메시지로 아카데미 수상작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본 글에서는 『코다』의 수상 의미를 분석하며, 최근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들이 지향하는 정서적 방향성을 함께 살펴봅니다.
『코다』가 들려준 감동의 언어
『코다(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s' 의 약자로, 청각장애 부모 아래에서 자란 청인 자녀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영화는 바로 이 특수한 가족 구조를 중심으로, 소통의 어려움과 정서적 연대를 그려낸 따뜻한 성장 드라마입니다. 주인공 루비(에밀리아 존스)는 음악에 재능이 있지만, 부모와 오빠는 모두 청각장애인입니다. 그녀는 가족의 통역자 역할을 하며 살아가지만, 음악이라는 자신의 꿈과 가족의 기대 사이에서 점차 혼란을 겪습니다. 영화는 전형적인 ‘청춘 성장 서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 배경에 소수자의 삶과 문화적 다양성을 섬세하게 녹여냅니다. 단순히 장애를 극복하는 영웅담이나 감동 코드를 활용한 것이 아니라, 청각장애인 가족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담아냄으로써 진정성과 현실성을 확보했습니다. 감독 션 헤이더는 청각장애 배우들을 실제로 캐스팅하며 연기 이상의 현실감을 부여했고, 이 덕분에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중간지점을 오가며 관객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특히, 루비가 음악 오디션에서 노래를 부를 때, 카메라는 그녀의 목소리를 끊고 부모의 시점에서 ‘무음’을 들려주는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연출로 꼽힙니다. 루비가 노래하는 것을 아버지가 바라보는 장면에서 사운드 디자이너들은 최소한의 잡음이나 웅성대는 소리라도 넣자고 요청했으나 감독은 그건 청인들이 침묵 속에서 느끼는 불편함일 뿐이고 농인의 경험이나 관점은 아니라며 무음으로 관철했다고 합니다.
아카데미가 『코다』를 선택한 이유: 포용, 공감, 희망
『코다』는 영화적인 실험이나 기술적 혁신보다는 ‘이야기 자체의 힘’으로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최근 오스카는 블록버스터나 거대한 서사보다는, 인물 중심의 정서적 서사에 높은 평가를 부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코다』는 바로 그 흐름의 정점에 선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 영화는 ‘포용과 다양성’이라는 현대 오스카의 핵심 가치를 정확히 반영합니다. 아카데미는 2020년대 들어 수상작 선정에 있어 인종, 성별, 장애 등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고려하는 기준을 강화해왔습니다. 『코다』는 장애를 ‘극복해야 할 약점’으로 그리지 않고,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존중합니다. 이는 기존 헐리우드 영화의 틀에서 벗어난 진보적인 시선으로, 수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둘째, 영화는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섬세하게 풀어냅니다. 이는 문화와 언어를 초월하여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강점으로 작용했으며, 이는 아카데미가 중요시하는 ‘보편성’과 ‘감정의 진정성’에 부합합니다. 루비의 선택은 단순히 음악의 꿈을 향한 것이 아니라, 가족과의 경계를 사랑으로 넘나드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관객은 진정한 공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셋째, 이 영화는 희망의 메시지를 잃지 않습니다. 장애와 불화, 갈등을 다루지만, 그 안에 유머와 사랑이 있고, 결국 모든 인물이 이해와 성장으로 나아갑니다. 『코다』는 관객에게 따뜻한 울림을 주며, 극장을 나설 때 마음이 가벼워지는 작품입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치유와 감정 회복이 필요한 시대정신과도 잘 맞물립니다.
『코다』로 확인된 오스카의 정서적 기준
『코다』는 기술적 완성도보다 이야기의 진심, 인물의 감정, 그리고 관객의 공감을 중심에 둔 영화입니다. 그 어떤 장면보다 조용한 장면들이 더 큰 울림을 주었고, 대사보다 침묵이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한 이 작품은, 최근 아카데미가 어떤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가장 작고 평범한 이야기일수록 가장 많은 이들에게 닿을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증명했습니다. 『코다』는 오스카 역사상 최초로 스트리밍 플랫폼(Apple TV+)에서 공개된 작품이자, 가족 드라마로는 드물게 작품상을 수상한 경우이며, 이는 아카데미가 이제 플랫폼, 장르, 주제를 넘어서 영화의 본질적인 가치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기생충』이 언어의 장벽을 허물었다면, 『코다』는 청각의 장벽을 넘은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진심 어린 이야기는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고, 울림은 꼭 ‘소리’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