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Her과 아이 로봇 등 AI를 주제로 하는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한 한국의 SF 영화 시장에서도 인공지능(AI)은 점점 중요한 서사 도구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단순한 기계적 존재로 그려졌던 AI가 최근에는 감정, 자아, 윤리적 갈등까지 포괄하는 입체적인 존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한국 영화 속 인공지능 캐릭터의 진화 과정을 살펴보고, 최근 작품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한국 영화 초기, 전환기, 현재와 미래로 나눠 알아보고자 합니다.
(AI의 초기 묘사) 도구이자 위협으로서의 존재
한국 영화 속 AI의 등장은 헐리우드에 비해 그 역사가 짧지만, 초창기에는 대부분 AI를 단순한 도구 혹은 위협적인 존재로 그렸습니다. 예를 들어, 2003년작 <내 사랑 싸가지>에서는 음성 기반 AI 기능이 일부 등장하지만, 이는 유머나 신기함의 대상일 뿐 본격적인 인공지능 캐릭터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후 <아이언맨>의 자비스, <아이, 로봇> 같은 헐리우드 AI 캐릭터들이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주면서, 한국 영화계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시기의 AI는 대부분 “비인간적인 존재”, “기술의 부산물”, “예측 불가능한 위험 요소”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8년 개봉한 <인랑>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고도로 발전된 기술과 무장 병기가 주요 요소로 등장하지만, 인공지능 자체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부재합니다. 당시 AI는 '배경 설정'으로서 기능했을 뿐, 서사의 주체로 등장하지는 못했던 시기였습니다.
(전환기) 감정을 가진 AI와의 상호작용
2020년대 초반부터 한국 영화 속 AI 캐릭터의 역할은 보다 진화된 형태로 변화합니다. 특히 감정, 자아,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성’이 주요 주제로 부각되면서, 단순한 기계가 아닌 이야기의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큰 특징입니다.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승리호>(2021) 입니다. 이 작품에는 로봇 캐릭터 ‘업동이’가 등장하는데, 단순한 기능 로봇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고, 인간 승무원들과 감정적으로 교류하며 이야기를 함께 이끌어 갑니다. 업둥이는 희생과 유대의 상징으로 묘사되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선택을 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이러한 묘사는 헐리우드의 <Her>나 <엑스 마키나>에서 보이는 감정 기반 AI의 전개 방식과 유사하지만, 한국적인 정서가 덧입혀져 보다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감정 교류를 기반으로 한 AI 표현은 관객의 공감을 유도하며, 로봇이나 인공지능도 하나의 ‘인격’으로 바라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와 미래) AI 윤리, 공존, 그리고 한국형 AI 서사
가장 최근의 한국 영화 및 드라마에서는 AI에 대한 기술적 묘사뿐만 아니라 윤리적 고민, 사회적 갈등, 철학적 질문까지 함께 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AI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주체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정이>(2023) 는 이러한 흐름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뇌 복제 기술로 전사 ‘정이’를 AI 화하는 이 영화는 AI가 인간의 기억과 감정을 어디까지 계승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동시에 기업의 이윤 논리 속에서 AI의 권리와 정체성, 인간성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탐색합니다. 이는 단순 SF 장르를 넘어선 철학적 문제 제기이며, 한국 영화가 AI를 단순 소재가 아닌 비판적 관찰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독립영화계에서도 AI를 다루는 실험적 시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간의 기억을 저장하고 복원하는 AI, 자율 판단을 하는 어린이용 로봇, 감정 상태를 조절하는 AI 카운슬러 등 다양한 설정이 한국적인 시선으로 재해석되고 있으며, 이는 향후 한국형 AI 서사의 중요한 초석이 될 것입니다.
한국 영화 속 인공지능은 단순한 도구에서 감정을 가진 캐릭터로, 그리고 사회적, 윤리적 존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승리호>의 업둥이에서 <정이>의 AI 인간화 서사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는 점차 인공지능을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 변화는 기술을 넘어선 철학적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 영화가 AI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펼쳐나갈지 기대되며, 우리는 그 변화를 주의 깊게 지켜보며 함께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AI는 인간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제는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닌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